Water S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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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본다 (Water Sees)
by Markn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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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본다’는 행위가 인간의 특권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얼음이 녹는 순간, 그 믿음은 무너졌다.
물이 나를 먼저 본다.
그것은 시선이 아니라, 온도의 감각으로 보는 행위다.
얼음 속에서 나는 색을 넣고, 그 색은 천천히 흘러내린다.
그 과정에서 나는 관찰자가 아니라,
단지 물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곁에서 목격하는 존재가 된다.
얼음은 나보다 먼저 사고하고, 색은 나보다 먼저 감정을 표현한다.
예술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스스로 인식하는 과정이 된다.
나는 이제 붓 대신 얼음을 든다.
얼음은 한순간의 형태를 만들지만, 곧 사라진다.
그 사라짐은 부재가 아니라, 감각의 다른 형태다.
물은 녹으며 표면을 스며들고, 색은 퍼지며 경계를 지운다.
그 경계의 해체 속에서 나는 세계가 스스로 보는 방식을 배운다.
Berardi는 “감각의 위기”를 말했지만,
나는 그 위기를 “감각의 귀환”으로 받아들인다.
물이 보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시선이 중심이 아니다.
감정도, 기억도, 사유도 물의 흐름 속에서
다시 윤리의 형태로 돌아온다.
물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나는 물을 닮고 싶다.
나는 내 감정을 붙잡지 않고, 내 이미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 대신 사라지는 순간에 나를 맡긴다.
그때 예술은 더 이상 재현이 아니라, 존재의 흐름이 된다.
> “나는 물을 본다. 그러나 물이 먼저 나를 본다.”
그 순간, 주체와 객체는 뒤바뀌고,
예술은 관계의 운동으로 변한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문명, **감각의 문명(Civilization of Sensation)**이다.
이 문명은 기념비로 세워지지 않는다.
대신 얼음처럼 녹아내리며, 또 다른 감각으로 이어진다.
나는 오늘도 얼음을 손에 쥔다.
그것은 단단하지만, 사라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라짐을 본다 —
아니, 어쩌면 그 사라짐이 나를 보고 있다.
> 예술은 남기지 않는다.
그것은 사라짐 속에서 감각을 되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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